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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낭대교(말레이어: Jambatan Pulau Pinang. 영어: Penang Bridge)는 말레이시아의 말레이 반도 서북부의 스버랑 프라이와 피낭 섬을 잇는 교량이다. 스버랑 프라이의 남북 고속도로와 피낭 섬의 젤루통 고속도로를 연결한다. 현대건설에서 시공을 맡아 1982년에 착공하였으며 1985년에 완공하였다. 교량의 중앙 경간은 말라카 해협을 통행하는 선박의 통과를 위해 사장교로 건설되었다. 1985년 9월 14일에 개통했으며, 교량의 총 연장은 13.5 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 중의 하나이며 말레이시아의 명소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 플러스 고속도로 주식회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1985년 이전까지 반도와 섬을 연결하는 교통 수단은 정부에서 운영하며 반도의 버터워스와 피낭 섬의 조지타운 사이를 왕복하던 페리 운행뿐이었다.

페리 운행과 마찬가지로, 피낭대교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은 피낭 섬 진입 때에만 통행료를 지불하며, 섬에서 반도로 나올 때에서는 통행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현재 피낭 대교는 교통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왕복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중이다. 제9차 말레이시아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제2피낭대교 사업 계획에 대해 정부의 승인이 나 있는 상태이다.

사진/내용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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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본토와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페낭섬을 연결하는 페낭대교! 이 대교는  진입로를 포함하여 총연장 14.5km, 해상 구간 교량 길이만 8.5km에 달하는 아시아에서는 최대,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긴다리다. 페낭대교는 교량과 교량에 연결되는 인터체인지가 둘, 고가도로가 넷, 여기에 2천 6백m의 연결도로가 함께 건설되어 있으며 대교 중간 4백 40m는 아름답고 장엄하지만 그 시공방법이 까다로워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사장교로 구성되어 있다.  

 1982년 1월부터 시작하여 1985년 2월까지 장장 36개월의 공사기간이 소요된 이 대공사에 투입된 인력은 한국 토목기술자 94만명, 현지인 176만명, 장비 또한 보통 크레인의 10배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3백톤급 해상 크레인과 항공모함에 버금가는 1만 5천톤급 바지선이 투입되었다.

 말레이시아인들의 자부심이자 자랑이 된 페낭대교, 이 다리를 만든 주역은 바로  한국의 현대건설 토목기술자들이었다!


▶ 막판뒤집기의 기적, 그 기적의 주인공들!  

 세계적인 명물이 된 페낭대교 프로젝트의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중동건설경기가 수그러들던 81년 당시였지만 3억달러에 달하는 페낭대교 입찰에 41개국이 넘는 국가가 참가했다. 그 중 복병과 같이 등장한 프랑스의 캄페농 베르나르사는 현대건설보다 무려 2천만달러가 싼 금액으로 응찰했고, 결국 현대건설은 2위로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서울로 돌아온 페낭팀은 입찰서류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가고 말레이시아 도로성에서는 현대건설을 1차 협상자로 선정하기에 이른다.  협상에 들어간 현대건설이 내놓은 제안은 캄페농이 제시한 공기보다 8개월이나 짧은 36개월안에 공사를 마치겠다는 것, 이는 공기를 단축시킨만큼의 통행료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캄페농사가 응찰한 금액과 같게 된다. 이 제안은 관철되어 마침내 말레이시아 도로성과의 계약이 체결되고, 그렇게 페낭대교 건설 프로젝트는 최종결정단계에서 프랑스의 캄페농사에서 현대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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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술자 94만명의 땀과 눈물이 만들어낸 신화!

 1982년 1월, 페낭대교 건설의 첫 신호탄이 울렸다.

페낭대교는 길이가 길뿐 아니라 구조가 까다롭고 조류가 센 지역에 건설되기 때문에 지리적 특성을 감안한 특수한 시공기법과 치밀한 사전계획이 요구되었다. 지반이 약한 바다 위에 교량을 세우기 위해서는 콘크리트 파일을 박아 바닷물을 막고 지반을 다진 후에 교각을 세워야만 했다. 현장 조사결과 해저 암반층에서 해수면까지는 60m, 그러나 그전까지 페낭팀은 60m짜리 콘크리트 파일을 단 한번도 시공해본 경험이 없었다. 60m짜리 파일의 경우 그 무게만 60톤, 고심끝에 페낭팀은 30m짜리 콘크리트 파일 두개를 연결해 해상해서 용접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조류가 수시로 바뀌는 바다에서 30m짜리 콘크리트파일을 설치하고 연결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현지에 파일공장을 건설하여 파일을 제조하고, 설치하는데까지 밤낮없는 마라톤회의와 끊임없는 야간작업이 이어졌다. 15톤 해머의 파일 내려치는 소리가 말래카해협에 울려퍼지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는 페낭팀. 그들의 거침없는 도전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페낭대교의 하이라이트, 사장교 건설에 나서다!

페낭대교건설에 착수한지 2년 9개월만에 상판공사가 끝이 났다. 그리고 페낭대교 프로젝트의 최대 난공사에 해당하는 사장교 건설구간이 시작되었다. 페낭대교가 들어서는 말래카 해협은 말레이시아 해상교통의 중심지이자 물류 기지역할을 하는 곳이다. 하루 평균 페낭섬을 오가는 선박만 500대, 따라서 다리를 놓더라도 선박의 운행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 페낭대교의 사장교 구간은 440m에 이르는 구간의 양끝에 거대한 주탑을 세운 후 상판으로 올리고 케이블을 연결하도록 설계되었다. 바다 한가운데 63빌딩 높이의 거대한 주탑이 세워지고 사장교 상판이 올라갔다. 주탑에 올려진 사장교의 상판을 지지하는 역할은 케이블이 담당하게 된다. 케이블 설치는 100M가 넘는 상공에 매달려 진행되는 작업으로 긴장의 연속이다. 강풍이 불면 작업을 중단하고 바람이 잦아들면 작업을 재개하기를 12개월, 마침내 144가닥의 설치가 완료되었다. 목숨을 담보로 벌인 한판승부가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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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기술이 말레이시아의 자랑이 되다! 

1985년 8월 3일, 36개월 동안의 대장정을 마치고 개통된 페낭대교 위에는 개통식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승용차를 타고 페낭대교를 건넘으로써 개통을 축하했다.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환호했고 프로젝트팀은 감격했다.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자랑거리가 된 페낭대교는 1986년 미국 컨설팅엔지니어링협회에서 주관한 16회 엔지니어링 우수상 시상식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다.

한국의 토목기술자들이 만들어낸 땀과 눈물, 기술의 결정체 페낭대교!

대한민국의 기술이 말레이시아의 자랑이 된 쾌거로 건설사에 기록될 것이다.


내용출처 : KBS 신화창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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